7화: 너 열이라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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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임안은 오전 내내 물리 문제와 씨름했다. 쉬는 시간, 최수아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일부러 뒤돌아 박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책상에 엎드린 채, 아주 조용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창밖에는 가을바람이 불어 낙엽을 흔들었고, 누렇게 변한 벌레 먹은 잎사귀 몇 개가 교실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중 한 개가 소년의 밤색 머리카락 위에 떨어졌다. 그 잎사귀는 모양이 아주 예뻤다. 하트 모양 같았지만, 벌레가 갉아먹어서 한쪽이 뜯겨 나가 있었다. 임안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손을 뻗어 그 잎사귀를 집어서는 연습장 사이에 끼워 넣었다… ***** 저녁 자습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 되자, 청소 부장 강수혁이 다가와 그녀와 최수아에게 신신당부했다. "최수아랑 너는 먼저 가도 돼. 김명오랑 박찬영, 너희 둘이 쓸어." 임안은 그 말에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수혁은 우재영의 농구 팀 동료일 뿐만 아니라, 최수아를 아주 좋아했다. 과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강수혁이 최수아에게 고백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수아는 거절했고, 거절의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임안은 그 말이 그저 얼버무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가 말한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우재영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최수아가 도대체 언제부터 우재영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수아가 말을 걸어왔다. "안안, 우리 가자." "안 쓸어?" "방금 강수혁이 말했잖아. 우리 둘은 안 쓸어도 된다고. 걔는 이름 안 적을 거야." 최수아는 이미 짐을 다 챙겨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안은 천천히 말했다. "그럼 너 먼저 가." 최수아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 교문 앞에서 우재영 안 기다려?" 임안은 고개를 저었다. "걔를 왜 기다려?" "너 전에는 항상 기다렸잖아!" "나 이제 걔 안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임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최수아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 변화가 스쳐 지나갔다.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나 먼저 갈게?" 임안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바이바이~" ***** 최수아가 교실을 나설 때쯤, 박찬영과 박찬영의 옆자리 김명오는 이미 교실 밖으로 나가 빗자루를 가지러 간 후였다. 다른 아이들이 거의 다 나가자, 그들은 둘이서 한 조씩 맡아 복도를 쓸기 시작했다. 임안도 빗자루를 들고 자신의 자리가 있는 조를 맡아 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박찬영의 자리까지 쓸게 되었다. 그의 자리 밑은 아주 깨끗해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국어, 수학, 영어, 물리, 화학, 생물 순서대로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세워져 있는 책들 사이에는 물리 문제집이 펼쳐져 있었다. 임안은 고개를 들어 박찬영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열심히 바닥을 쓸고 있을 뿐, 그녀 쪽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 지난번에 박찬영이 아주 열심히 물리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을 봤는데! 왜 최수아는 그의 성적이 안 좋다고 말한 걸까? 임안은 마음속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손가락으로 살짝 문제집을 넘겨 보았다. 그러자 문제집에는 최종 답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풀이 과정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설마 정말 성적이 안 좋은 건가?" 그녀는 중얼거렸다. 【띵! 001 알림: 호감도 -1】 주변 공기 중에 차 나무의 맑은 향기가 퍼져 나가고, 임안은 목덜미에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찬영이 그녀에게서 반 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그의 문제집 위에 놓인 그녀의 하얀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임안은 재빨리 손을 치우고 몸으로 그의 시선을 가렸다. 그러고는 그 틈을 타 재빨리 문제집 페이지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살짝 빼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네 자리까지 쓸다 보니까, 꽤 깨끗하길래…" 박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시선을 그녀의 손가락에서 그녀의 얼굴로 옮겼다. 그러고는 몸을 살짝 기울였다. 점점 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과거 우재영 외에는 다른 남자와 접촉해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다른 남자의 손을 잡아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박찬영의 그 야성적인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긴장한 채 눈동자를 굴리며 교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명오는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교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거리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박찬영은 갑자기 임안의 허리 뒤로 손을 뻗어 손가락 마디를 움직였다. 그러고는 문제집을 덮었다. "내 물건 함부로 만지지 마." 그의 목소리는 조금 쉰 듯했고, 내뱉는 숨결은 뜨거웠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감정이 실려 있었다. 임안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팔 아래에서 빠져나왔다. 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 김명오는 아주 때맞춰 교실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재빨리 가방을 챙기면서 박찬영에게 말했다. "난 집이 멀어서 먼저 갈게. 너 쓰레기 버리고 와."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박찬영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쏜살같이 교실을 나가 버렸다. 교실에는 다시 그들 둘만 남았다. 박찬영은 임안이 방금 떨어뜨린 빗자루를 주웠다. 그러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박찬영이 쓰레기통 손잡이 한쪽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리려고 하는데, 그의 책을 넘겨 보았던 그 하얀 손가락이 반대쪽 손잡이를 잡았다. "나랑 같이 가자!" 임안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박찬영의 몸이 움찔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그녀를 바라보았고,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고는 그녀가 앞장서서 그를 이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쓰레기장은 건물 맨 뒤편, 자전거 거치대를 지나면 나왔다. 저녁 하교 시간 이후라 학교에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쓰레기장 같은 곳에는 더더욱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하필이면 운동회 때 박찬영을 모함했던 우재영 반의 이기현을 마주치고 말았다. 그들은 무리 지어 스쿠터를 타고 학교 안을 질주하다가 박찬영을 발견하고는 스쿠터를 멈춰 세웠다. "어이쿠, 이거 10반 박찬영 아니야? 이 저녁에 쓰레기 버리러 나왔냐? 아직도 아빠가 여러 명인 니네 집에 안 돌아갔어?" 임안은 박찬영을 힐끗 쳐다보며 그런 말에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박찬영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지금 박찬영이 어떤 기분일지는 몰라도, 임안은 지금 이기현의 그 몇 마디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쓰레기통을 내려놓고는 몸으로 박찬영을 가로막았다. "박찬영, 너 먼저 가서 쓰레기 버리고 와. 저런 애들 신경 쓰지 마!" 이기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박찬영과 함께 있는 사람이 임안인 줄 몰랐다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에이! 임안, 너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임안이 되물었다. "난 그냥 친구 만나서 몇 마디 하는 건데, 네가 왜 나서? " 임안은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말했다. "박찬영은 우리 반인데, 내가 왜 나서면 안 돼? 너 지금 일부러 시비 거는 거지?" "운동회 때 우리 박찬영 모함한 것도 모자라서, 학교에서까지 이렇게 둘러싸고 괴롭히려고?" 【띠링! 001 알림: 호감도 +2】 "우리 박찬영? 임안? 너 눈이 삐었냐? 왜 저런 애를 좋아해?" 임안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이기현은 목소리를 더 높였다. "우재영이 자기 좋아했던 애가 살인자에 매춘부 아들이랑 엮이는 거 알면 기절하겠다!" 임안은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니.까! 이기현씨는 제가 우재영을 좋아한다는 헛소문 좀 퍼뜨리지 마세요. 제가 감히 어떻게 넘볼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박찬영은 여전히 쓰레기통을 헹구고 있었다. 임안은 그에게 다가가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러고는 그의 손목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 가자. 아직 뇌가 덜 자란 고등학생들 신경 쓰지 말자!" 임안은 이기현의 스쿠터 앞으로 걸어가 발로 앞바퀴를 툭 찼다. 마침 이기현의 발이 앞바퀴에 가까이 있었고, 그 바람에 바퀴에 밟히고 말았다. 박찬영은 앞서 걷는 소녀에게 손목을 잡힌 채 끌려갔다. 저녁 바람이 그의 가슴을 스쳐 지나갔고, 그의 심장이 불현듯 움찔했다. 가슴속이 간질거려 괜히 초조해졌다. 몇 초 후 뒤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임안! 너 미쳤어?!" 【띠링! 001 알림: 호감도 +2】 ***** 교실로 돌아온 임안은 자리에 서서 짐을 챙겼다. 짐을 챙기면서도 방금 전 박찬영의 손목 온도가 자꾸만 생각났다. 정말 차가웠다. 방금 전 교실에서 박찬영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분명 그의 숨결은 뜨거웠다. 그런데 그의 손가락과 손목은 차가웠다. 임안은 문득 몸을 돌려 그에게 물었다. "박찬영, 너 열 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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